집중분석 > 문화놀이터 놀 권리와 놀이가 문화가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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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문화놀이터 놀 권리와 놀이가 문화가 되는 사회

글: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전 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장
2018년 5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새 문화정책 준비단은 ‘사람이 있는 문화-문화비전 2030’과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을 발표했다. 특히 문화비전 2030은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 등 세 가지 핵심가치를 근간으로 9개 의제와 37개 주요 과제를 담고 있는 데 이 중 기존의 문화비전 과제와 달리 주목을 끈 것은 문화놀이터 사업이다. 문화놀이터는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을 이끌어 내는 사업으로 궁극적으로는 놀이가 하나의 권리이며 놀이가 문화가 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낙후ㆍ폐쇄된 기존 놀이터를 문화놀이터로 바꾸어 주거지 근처에 문화기반 시설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놀이터 사업은 지역 환경이나 소득격차에 따라 존재하는 놀이환경의 차별과 생활문화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반갑다.
이와 유사하게 서울시에서는 2015년 창의어린이놀이터 사업을 추진한 바가 있다. 창의어린이놀이터란 낡고 개성없는 놀이터를 시설물 위주가 아닌 놀이활동 중심으로 만드는 것으로, 계획단계부터 유지관리까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점에서 기존 놀이터 조성사업과 차별화된다. 모험심과 창의력을 심어주는 놀이 중심의 창의어린이놀이터는 놀이가 생활문화가 되어 놀이터가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서울시 창의어린이놀이터는 2015년 29개소를 시작으로 2016년 20개소, 2017년 22개소에 이어 2018년 20개소를 조성하였고 시행 첫 해부터 매년 50억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문화놀이터가 진정한 아이들의 놀 권리를 실현하고, 놀이와 문화예술이 접목되어 놀이가 문화가 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커뮤니티 중심공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행정이 주도하는 하향식 사업이 갖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문화놀이터가 문화볼모지역에서 놀이를 통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지역거점이 되기 위해서 먼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놀이터를 정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놀이터는 ‘놀이’와 ‘터’로 구성되어 있고 놀이와 터는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 의해 연결된다. 놀이터가 놀이를 하는 터, 즉 노는 장소를 의미한다면 놀이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터를 디자인하는 일은 우선 놀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놀이는 문화와 삶의 양식에 따라 다르고, 나이와 성별, 그리고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다. 혼자 놀 때의 놀이와 함께 어울려 놀 때의 놀이 역시 다르다. 놀이는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고 한계를 경험하여 향후 살아갈 삶의 지지대가 될 수 있는 도전정신을 키워줌과 동시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집단 놀이를 통해 리더십을 키우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익히고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통상 놀이터를 놀 수 있는 기구가 있는 곳으로 인식한다. 즉 놀이터를 놀이시설물과 동일하게 여긴다. 그러다보니 놀이터가 놀이시설물에 의해 그 기능이 제한되고, 아이들의 놀이가 시설물의 기능에 의해 획일적으로 규정되는 한계를 갖는다. 놀이터가 놀이를 담는 터가 아니라 놀이시설물을 담는 터로 전락한 것이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미끄럼틀과 그네 등의 주요 놀이시설물의 기능은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안전기준에 맞춘 주요 놀이시설물의 디자인의 폭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전국 곳곳에 비슷한 놀이터가 마구잡이로 양산되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자, 무엇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놀이였는지. 골목 하나로도 온갖 놀이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놀이터를 통해 무엇을 꿈꾸었을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못 노는 이유가 무엇일까? 입시지옥이 초등학교 입학하면 시작된다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아이들은 늘 바쁘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고 행여 시간이 나도 함께 놀 친구도 없다. 정작 놀려고 놀이터를 찾아도 재미난 놀이가 없어서 금방 흥미를 잃고 만다. 놀이가 어린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아이들만의 특권이 될 수는 없을까? 놀이터가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놀고 싶을 때, 놀고 싶은 대로 맘껏 놀 수 있을 기회가 세상 곳곳에 열려 있을 때 권리는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권리를 되?은 아이들이 세상을 놀이의 창으로 바라볼 때 미래를 향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놀이에 대한 전문가의 생각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놀이가 갖는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서천석_소아청소년정신과의사


“친구들하고 놀이를 하면서 부딪히고 같이 활동해야 아이들은 인간 관계에서 어떻게 자기 주장을 하고, 남의 주장을 받아들이며, 타협을 하는지를 배울 수 있어요. 상대를 어떻게 아껴줘야 하고 나를 아껴달라는 말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배우죠. 이 모든 것을 어린 시절에, 관계 속에서 배워야 해요.”

 

이정모_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호모사피엔스는 모든 동물 가운데 유년기가 가장 깁니다. 긴 유년기에 놀면서 사회를 배우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호모사피엔스의 장점인 거죠. 놀이는 기본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거에요. 어릴 때 보면 정글짐 같은 데에서 뛰어 내리잖아요. 처음에는 낮은 데에서 뛰어 내리고, 조금 크면 더 위에서 뛰어 내리고, 그렇게 점점 높이를 더해가면서 뛰어 내릴 수 있는 내 위치가 어디까지인지,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계속 시험해 볼 수 있죠. 놀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배웁니다. 이 경험이 없으면 어디에도 도전할 수 없어요.”

 
놀이터를 꿈꾼다는 것은 아이들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꿈꿀 수 있는 희망의 창이다. 놀이가 권리가 되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즐기는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작고 소박한 놀이의 즐거움을 아이들이 서로 나누고 세상을 향해 밝고 건강한 희망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놀이터에 담아야 한다. 아이들의 놀 권리가 놀이터에서 실현되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아이들과 함께 만들 때 가능하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눈높에 맞는 놀이에 초점을 두고 아래의 세 가지 비전을 갖고 기획, 설계, 그리고 시공되어야 한다. 첫째, 놀이(터)를 통해 아이들의 놀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둘째, 아이들이 꿈꾸는 놀이(터)를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셋째, 놀이시설물에 의존하지 않고 창의적 놀이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사진1> 방치된 놀이터 바닥에서 임시로 아이들의 놀 권리를 찾다 - 사례 중랑구 세화어린이공원 놀이터

이미지 출처:집필자 촬영

놀이시설물에 의존하지 않는 창의적 놀이공간이란 무엇일까?

현행법은 놀이터를 ‘놀이시설’이라고 부른다. 법이 정한 놀이시설은 ‘놀이기구가 설치된 놀이터’이다. 놀이기구 없이 바위나 웅덩이, 혹은 나무 그루터기 등으로 이뤄진 놀이공간은 법에 의하면 놀이시설로 인정받지 못한다.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는 없다. 어딜 가나 똑같은 조합놀이터, 미끄럼틀, 그네, 시소가 천편일률의 놀이터를 만든다. 아이들은 놀이기구 없이는 잘 놀지 못한다. 놀이기구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슨 의미일까? 옛날 골목길을 회상해보자. 놀이기구 하나 없는 골목길에서 벌어지지 않는 놀이가 없었다. 골목의 흙바닥, 마주한 집의 담장, 담장 너머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 바닥에 뒹구는 돌멩이, 이 모든 것이 동네에 변변한 놀이터 하나 없던 시절의 놀이기구였다. 놀이와 무관해 보이는 자연스런 일상의 재료에 아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놀이의 흥미를 부여하고 놀았다. 좁지만 아이들에게 골목은 넓은 세상이었다. 골목이 놀이터였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에게 놀이는 자유를 의미했다. 이런 골목의 경험을 놀이터에서 살릴 수 없을까? 그래서 놀이터를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놀이기구에 의해 아이들의 행위를 미리 규정하지 않고 사용자에 따라, 욕망에 따라,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놀이가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지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할까? 놀이기구에 의존하지 않는 창의적 놀이공간을 상상하기 위해 먼저 기존 놀이터가 갖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놀이기구의 경직성, 놀이행위의 경직성, 시설물 중심의 디자인의 경직성, 놀이터 가치의 경직성에서 벗어날 때 놀이터를 통해 놀이와 문화가 통합되고, 놀이문화를 통해 아이들과 어른이 이어지고, 놀이터가 지역거점이 되어 사람과 지역을 잇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진2>

커뮤니티의 생활문화거점으로 거듭 나다 - 사례 중랑구 세화어린이공원 놀이터

이미지 출처:집필자 촬영

<사진3>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도쿄 후지 유치원 지붕 데크

이미지 출처:집필자 촬영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터
놀이터를 조성할 때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고, 실제 아이들이 노는 걸 보면서 행동패턴이나 어울려 노는 방식 등을 관찰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 공간을 디자인 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아이들이 만들어진 놀이터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일이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2조가 다음과 같이 정한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결정할 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동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찍어내듯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를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놀이터로 바꿔 주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아이들의 놀이관찰을 통해 살펴 본 놀이터는 아이들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무한세상이 펼쳐지는 놀이터에서 관찰된 아이들의 유형은 무척 다양하다. 처음 본 아이들이 즉석에서 친해지는가 하면, 서로 특정한 놀이기구를 먼저 차지하려고 심각하게 다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 기존의 놀이기구를 묶어서 훨씬 더 큰 놀이를 상상해 어울려 놀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관계와 경험이 쌓이는 곳이 놀이터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다양한 관계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놀이터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정도를 디자인의 전 과정을 통해 얼마나 열어 두느냐에 달려 있다.
아파트단지나 동네에 새로 지어진 놀이터에는 어딜 가나 똑같이 생긴 조합놀이대가 있고, 기차나 동물을 형상화한 놀이기구들이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지만 아이가 손잡고 나온 엄마나 아빠와 함께 놀 수 있는 가족형 놀이터와 같은 생활의 상식이 공간이 되는 그런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린이라고 모두 다 똑같은 어린이가 아니다. 학년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놀이방식도 다른데 놀이터는 이용자인 어린이를 보편적인 동일체로 파악하여 늘 똑같은 놀이만을 강요하다 보니 고학년 어린이는 체형에 맞지 않는 놀이기구가 불편하고 저학년 어린이는 고학년 어린이한테 놀이기구를 빼앗겨서 못 노는 그런 일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는 허다하게 발생한다.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과 이야기가 담긴 놀이터는 아이들과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사진4> 장애 비장애 아동이 함께 하는 통합놀이터 -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꿈틀꿈틀 놀이터

이미지 출처:집필자 촬영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관찰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놀이터 설계에 적용하는 일은 쉽지 않고 또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놀이터에는 다양한 아이들의 시선과 이야기가 담길 수 있다. 그래야 놀이터가 비로소 모든 아이들이 이곳이 내 놀이터라는 소유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공간을 통한 놀이의 순환구조를 만들고, 어린 아이와 엄마가 함께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주고, 영유아들이 커가면서 놀이의 발전단계를 경험할 수 있는 영역도 만들어주고, 놀이기구를 단순한 기능의 단계에서 사회적 놀이의 단계로 전환시키는 일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확장시키는 작업이며 이 일은 디자이너의 상상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이들과 함께 꿈꾸고 만드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견해로, 발행처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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