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1 > “다음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을 위하여”

※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견해로, 발행처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달의 이슈1

“다음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을 위하여”

글: 심한기 대표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 다음세대, 미래세대라 호명하지 말자.

2018년은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과 함께 비판의 움직임 또한 강했던 해였다. 국민들의 정책참여에 대한 의지, 사회변화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한 해이고, 우리 생활 모습에서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생활과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욱 가치 있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 고민은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로 이어져, 문화예술계의 중요한 기회이자 변화를 끌어내는 동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 속 다양성이 점점 드러나면서 갈등과 충돌의 모습도 강해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성찰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실제로 찍은 00고등학교 시간표
실제로 찍은 00고등학교 시간표
타일 공장의 경식이에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더니 동그라미라 하고
지금의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2001년~2008년)로 호명된 적이 있다. ‘빈틈없는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자원으로의 활용’하겠다는 국가적 기획력과 사명감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여전히 청소년은 미래의 자원이며 미래의 주인공이라 호명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청춘의 자유를 저당 잡힌 채 밤낮없이 최선을 다해야만 사회나 부모가 요구하는 생존이 가능해진다. 미래세대, 다음세대라는 단어에는 부모와 교사의 따뜻한 마음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또는 당사자로서의 배려와 의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현재를 스스로 만끽하며 스스로 가능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배려와 의도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을 미래세대 또는 다음세대라고 호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반자이다.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그린 그림▶
출처 : 이재호, 조윤영, 전정윤(18.11.10),
[단독] 중고생 7만명 '자해 경험' …우리아이는 상관이 없다고요?, 한겨레
우울증과 자해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은주(가명)씨가 그린 그림▶
 

# 잘해주는 척 하지만 결국 청소년은 대상일 뿐이다.

실제로 목격했던 장면하나.

00여고 학교 강당에 긴장감이 돈다. 매년 있는 학교축제 무대에 올릴 공연팀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 시간이다. 학교문화예술교육, 창의적 체험학습, 방과후교실, 학교 동아리활동 등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오디션을 보고 있다. 무대 앞 일렬로 놓여진 책상 앞에서는 담당교사 몇 명과 학생회 간부 몇 명이 진지한 모습으로 점수를 체크하고 있다. 댄스, 밴드, 노래 등 정해진 순서대로 최선을 다해서 공연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거나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은 없고 먼저 공연을 하는 친구들의 실수를 기대하는 눈치가 더 많다. 연주를 못해도 흥겹거나, 노래를 못해도 즐거웠다면 탈락이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 누군가의 판단에 의한 결정된 순위를 아무도 따지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선정되어 축제를 나가면 좋고 안되면 다시 열심히 연습을 해서 도전하면 된다.

학교축제의 무대에서도 ‘완장’ 찬 교사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고 다른 학교축제에 나가려해도 ‘완장’ 찬 교사나 학생회 친구들에게 오디션을 받아야 한다. 완장이 정한 판단에 의해 순위와 참여가 결정된다. 형식적인 활동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문화예술 동아리들은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남은 동아리는 댄스, 밴드 동아리 정도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디션 또는 각종 경연대회에 온 집중을 하며 행위의 즐거움, 창작의 설레임, 나눔의 감동을 거세당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스스로 재단할 수밖에 없는 일상으로 내몰려지고 있다. 규정, 획일, 억압의 일상과 교육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문화예술교육, 문화활동이라 말하고 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학교현장의 문화적 일상은 절망적이다. 학교문화예술교육, 혁신교육 등의 대안들이 나름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발현 주체들의 착시현상’에 대한 지독한 성찰이 없다면 더욱 절망적일 수 있다.

2000년 문화부에서는 ‘21세기 지식기반사업’이란 대명제를 걸고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것에 힘을 쏟기 시작했고, 2003년 문화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선포했다. 그리고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10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뭔가 되고 있을 것 같고 십대들이 교육과 문화의 주체로 등장할 만하다고 기대할 수 있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다. 그나마 자유롭게 숨을 쉬며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한 학교축제나 청소년축제에서 십대 축제기획단들의 당찬 활동들은 이어지고 있지만 최종 선택과 결정은 늘 어른들의 몫이다.

정부나 사회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잘 보살피고 응원해주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청소년은 교육과 문화의 대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문화산업의 중요한 소비자로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전이며 문화예술교육의 막강한 고객이기도 하다. 공교육이건 문화예술교육이건 그들을 교육의 대상자 또는 소비자로 ‘허위인식’ 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또는 교육의 주체로 또는 문화의 주인으로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오디션과 경연대회를 버리고 청소년 스스로 기획하고 노는 ‘청소년문화-클럽데이’ / 사진제공: 품청소년문화공동체
오디션과 경연대회를 버리고 청소년 스스로 기획하고 노는 ‘청소년문화-클럽데이’ / 사진제공: 품청소년문화공동체

# 십대가 교육과 문화의 주체로 설 수 있어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let it be'

인공지능과 알파고 덕에 미래교육에 대한 관심이 시끌벅적했었다. 노원구에 생기는 청소년직업체험센터 ‘노원하자’를 운영하는 단체의 선발기준에도 미래교육이 우선시 되었다. 결국 일상의 지혜와 기술, 느리지만 주체적 삶의 기획을 제안했던 지역의 요구와는 반대로 로봇, 드론, 미래교육을 내세운 기관에게 손을 들어줬다. 더 이상 미래를 위한 투자로만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어진 문제와 질문에 익숙한 십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의 소통과 토론 그리고 스스로의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대가 당당한 시민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마을의 주인으로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로서 등장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태도와 인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가르치거나 육성하려는 태도가 아닌 위태롭거나 불안하더라도 그들 스스로 시도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과정과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let it be' (냅둬유!) 놔둬야 한다. 근데 놔둬야 할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 그냥 놔둔다고 다 잘 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놔두면 잘 놀 수 있는 과정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간표, 사업, 프로그램 등과 같은 형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 자기 삶의 기획이 가능한 십대 문화기획자

공부를 먼저하고 남는 시간에 놀아봐라, 또는 공부 잘하면 놀게 해줄게...를 버리지 못하면 문화도 상상도 사유도 또 다른 과목이 된다. 총체적인 일상과 삶 안에서의 기획력이 필요하다. 즉 짧게 허용된 시간과 기회 안에서 허락받고 놀 것들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과 일상 속에서 가능한 일상의 기획, 자기 삶의 기획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멋진 과정을 ‘스스로 가능한 문화기획’으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멋진 기획자 또는 방송에서 본 ‘간지’나는 기획을 흉내 내기보다는 지루한 일상을 스스로 재미나게 벗어날 수 있는 찌질한 시도들이 더 중요하다. “사과를 맛보았더니 참 맛난다.” 즉 맛나는 사과를 사서 자꾸 던져주지만 말고 사과의 맛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해줄 수 있는 도움과 응원들을 찾아간다면 청소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이 생겨날 수 있다.

십대문화기획단입학증 (사진제공:품청소년문화공동체)

십대문화기획단입학증 (사진제공:품청소년문화공동체)

 

우끼는 상상..

그 해 첫 눈이 오면 모든 학교에서는 수업을 멈추고 교사와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간다.
등교 전에 첫 눈이 오면 아예 학교가 문을 닫는다. 눈길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첫 눈의 즐거움을 온 몸으로 맞는 것이 행복이며 이런 행복의 경험 자체가 곧 교육이라고 생각해서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4천 달러도 안 되는 부탄이라는 나라의 실제 상황이다.
낭만과 욕망이 일상의 교육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서울시에서는 한 달에 50만 원 가량의 청년수당(응원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도 응원수당을 주는 것은 어떨까?
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50시간 씩 낭만수당, 응원수당을 주는 거다.
각자의 선택으로 50시간을 마음대로 쓰게 하는 거다. 학교에서 수업중이건, 학원에서
수업중이건 교사나 부모의 허락 없이도 온전하게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시간을 주는 거다.
수학수업 중에 영화를 보고 싶다면 영화관을 가고, 영어수업 중에 남자친구가 보고 싶다면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거다. 청소년낭만수당, 청소년 응원수당을 제안한다.

[이런 상상]을 읽으면서 애들이 그 시간에 게임방을 가거나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라고 걱정부터 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꼰대’인거다.

※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견해로, 발행처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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