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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 집중분석 > 미피의 나라 네덜란드 문화 창조 산업의 정책 동향과 전망
글: 김선영 프리랜서 작가, 네덜란드 해외통신원, 네이버 디자인 객원기자
사진 1 네덜란드 대표 캐릭터 미피 뮤지엄

유럽의 작고 낮은 나라인 네덜란드는 비록 한국에는 풍차와 나막신 등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문화 분야에서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다. 네덜란드 동화 작가인 딕 부르나(Dik Bruna)가 만든, 지난해 탄생 60주년을 맞은 어린 토끼 캐릭터 '미피(네덜란드 어로는 나인쩨, Nijntje)', 트랜스 음악 DJ이자 프로듀서로 세계 최고의 DJ로 꼽히는 '아민 반 뷔렌(Armin van Buuren)',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를 겪는 아이들을 위한 게임 등으로 유명한 Ranj Serious Games사 등이 모두 네덜란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는 인구의 반 이상이 여가와 자유 시간을 아마추어 혹은 자원 봉사자 자격으로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문화 활동 참여 빈도는 다른 유럽 국가의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또한, 네덜란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뮤지엄, 비주얼 아트와 렘 쿨하스 등으로 대표되는 건축가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디자인으로는 현재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로 각광 받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문화와 콘텐츠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고 효율적이며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높은 접근성을 지닌 것이 가장 특징이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은 산업 디자인, 건축, 패션 디자인, 디지털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사진, 서비스 디자인, 디자인 연구, 사용자 경험 디자인 등의 '창조 산업'과 출판, 게임 개발, 영화, TV 및 라디오 프로듀서, DJ, VJ 등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구성되었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은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인테리어 디자인, 게임, 패션과 건축 부문이 유명하다. 2015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에는 13만 개가 넘는 문화 창조 산업 기업체가 있다. 네덜란드의 창조 산업은 총 105억 3,400만 유로 규모로, 네덜란드 GDP의 약 2%를 차지한다. 노동 인구 중 약 2.55%에 해당하는 18만 명이 관련 산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으며, 생산 규모 면에서 전 세계 3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의 해외 수출은 전 세계 8위의 위용을 자랑한다.

네덜란드에서 'Creative Industry'로 불리는 문화 창조 산업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네덜란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경쟁력과 영향력을 보유한 산업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네덜란드 정부는 2011년 문화 창조 산업을 Agri-food sector, Horticulture and starting materials, Water, High Tech, Energy, Logistics, Life Science and Chemicals와 함께 정부의 핵심 산업으로 선정,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나아가 네덜란드 정부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문화 창조 산업에 약 1,735만 유로 (한화로 약 240억 수준)의 추가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이를 통해 2020년 네덜란드를 유럽에서 가장 창조적인 경제 국가로 만든다는 계획을 실현하고자 한다.

정부의 이러한 적극적인 지원 환경에 힘입어, 문화 창조 산업을 이끄는 네덜란드의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품, 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며 신선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복잡한 사회의 이슈에 대응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 창조 산업 관련 기업들은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앞장 서고 있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 종사자들 중 52% 이상이 지식 노동자로, 평균 32%인 다른 산업 부문에 비해 높은 지식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 종사자들이 네덜란드 사회 전반에서 혁신과 변화를 선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합리적이고 융통적인 네덜란드의 국가관을 반영하듯,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의 전문가나 해당 분야의 관련 기관 또한 매우 개방적이며 탄력적이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은 특히 독특한 사고방식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안전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위험요소 또한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이 과정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이는 네덜란드 특유의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이처럼 아이디어 기획부터 추진과 실행에까지 각 단계에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통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크로스오버' 작업 방식은 네덜란드에서 상당히 일반적이다. 네덜란드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와 작품을 볼 때면, 이들이 엔지니어로 생각될 정도로 각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많다. 또한 네덜란드 전반의 사회주의적인 기조에 맞게, 창조 산업의 전문가들은 보건, 안전, 에너지와 같은 사회의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학계와 산업계의 크로스오버

학계의 연구와 창조 작업, 비즈니스 간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네덜란드 문화 창조 산업 정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 종사자들은 또한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과 자유로운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력한 이온 기술로 스모그를 빨아들이고 깨끗한 공기를 방출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거쳐 현재 중국 베이징에 설치된 스모그 프리 타워(Smog Free Tower)의 경우, 네덜란드 인터랙티브 디자이너 단 로서가르드(Daan Roosegaarde)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델프트 공과대학 교수인 밥 울썸(Bob Ursem)이 협력하여 기술을 개발해 특허까지 냈다.

사진 2 스모그 프리 타워 (Smog Free Tower)

사진출처: Bic(Wikimedia Commons)

스모그 프리 타워 (Smog Free Tower)의 사례처럼 디자인과 연구진의 성공적인 협업은 이러한 정책 추진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학계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 구조 안에서 완성되는 서비스와 제품들은 네덜란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대학과 IT 파트너사의 공동 연구, 위트레흐트 대학과 게임 회사와의 파트너십, 네덜란드의 디자인 도시 중 하나인 아인트호벤의 디자인 아카데미와 필립스의 산학 협력은 네덜란드 문화 창조 산업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창조적인 스타트업 기업 인큐베이팅

사진 3 Oranje Handelsmissiefonds

사진출처: Oranje Handelsmissiefonds 홈페이지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 종사자 중 약 43%는 프리랜서 혹은 자영업자이며, 회사의 평균 종업원 수는 2명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러한 문화 창조 산업 부문의 기업 특성과 구조에 주목, 창조적인 스타트업 기업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네덜란드의 혁신적인 스타트업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Oranje Handelsmissiefonds(Orange Trade Mission Fund)로, 2013년부터 매년 10개의 네덜란드 기업이 이 펀드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 펀드의 특징은 단순한 자금 지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ING, KLM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네덜란드 소상공인연합회(MKB-Nederland)와 Netherlands Enterprise Agency(RVO) 등 공공 기관이 공동으로 해외 시장 진출과 성공적인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해 스타트업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 창조 산업의 인력들의 성장에는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 이들을 위해 약 8백만 유로 규모의 맞춤형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창조 산업으로 사회 이슈 해소에 기여하다

네덜란드의 문화 창조 산업은 사회적 이슈 해소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와 차별화된다. 이 곳의 문화 창조 산업 종사자들은 창작물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계와 사회에 가지고 있는 의견을 표현하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큰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사회적 이슈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미래의 변화를 이끌 것인지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으며 환경, 보건과 같은 굵직한 사회적 주제를 문화 창조 산업 소재의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한다.

사진 4 No Mad Makers

사진출처: No Mad Makers 홈페이지

대표 사례로 델트프 공대와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대학교가 공동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을 겪는 환자들을 위해 개발한 웹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네덜란드에는 현재 120만 명이 PTSD 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들을 위한 기존의 치료 방법은 효율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비용 또한 높다는 것이다. 두 대학교는 이러한 현실에 주목, 온라인 게임과 가상 코치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혁신적인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해 관심을 모았다.

최근에는 현재 유럽의 가장 첨예한 정치 주제인, 시리아 난민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슈화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디자인 회사 No Mad Makers라는 디자인 브랜드는 시리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타고 온 보트에 주목했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방치된 보트를 재료로 하여 튼튼하고 독특한 배낭을 제작했다. 이 배낭은 암스테르담의 Makers Unite 기관을 통해 난민들이 직접 만들며, 이를 통해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망명한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문화 창조 사업을 통해 공익에 기여하는 것도 네덜란드의 특징이다.

간섭과 관료제 없는 유연한 정책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정부 특유의 유연하고 효율적인 정책이 네덜란드 문화 창조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모든 문화 정책은 국가가 예술과 문화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이로 인해 일반 시민들과 문화와 관련된 기관이 예술과 문화 개발의 주체가 되며, 정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공공 예술과 문화의 후원자이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맡아 왔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혁신과 지속적인 성장과 기업가 정신을 고무시키는 법률과 정책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정부 기관들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문화 창조 사업 진행에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로드맵을 2020년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네덜란드는 좁은 국토와 높은 인도 밀도,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독립의 역사로 인해 종종 한국과 비교되곤 한다. 또한, 네덜란드와 한국 두 나라는 문화 창조 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인식, 이를 국가의 핵심 사업으로 선정한 것 또한 매우 유사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2011년부터 문화 창조 산업에 국가의 총 역량을 결집해 왔으며, 산업 전문가와 관련 기업들이 정부의 간섭 없이 세계 문화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네덜란드의 효율적이고 자율적인 문화 창조 산업 정책은 정부 개입과 주도의 관치적인 정책의 많은 부작용과 폐해를 경험하고 있는 최근의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Made in Holland Creative Industry 2014 05
CLICKNL Knowledge and Innovation Agenda for Creative Industries 2016-2019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and Science, Culture at a Glance 2014
https://www.hollandtradeandinvest.com
https://www.creativeholland.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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