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이달의 이슈

예술의 미래를 보려면 메타버스의 현재를 보라

글 : 캐슬린 김 법무법인 리우 미국변호사,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

피자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 해커가 마피아로부터 피자 주문을 받는다. 그런데 시간 내에 배달 임무를 완수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해커는 메타버스에 접속한 후 가상 현실 속 아바타인 스케이트 보더에게 배달을 부탁한다. 성공적으로 배달 임무를 완수한 후, 둘은 파트너십을 맺기로 한다.
1992년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 <스노 크래시 Snow Crash>의 도입부다. 이 소설에서 미국 SF 소설가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은 ‘메타버스(Metaverse)’와 ‘아바타(Avatar)’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메타버스’는 우주 또는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와 가공 또는 추상을 의미한다. 메타(Meta)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3차원 가상세계를 의미하고, ‘아바타’는 사용자의 분신이라는 의미로 자신이 직접 조작하는 캐릭터를 의미한다. 메타버스는 라이프 로깅, 거울 세계, 가상 세계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아직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소설 속 메타버스는 네트워크화된 가상 세계로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만든 분신, 아바타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당시만 해도 메타버스나 아바타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허구에 기반한 픽션의 구성요소 및 배경으로만 여겨질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메타버스가 다시 부각된 것은 2003년 <스노우 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한 가상현실 플랫폼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의 성공때문이었다. 이 플랫폼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자아 즉, 아바타를 통해 메타버스에서 친목, 취미 활동을 하고, 때로는 수익 창출 활동까지 했다. 제목처럼 가상의 세계에서 분신인 아바타가 현실적, 물리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 세계를 실감할 만큼 구현하지 못하던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미흡한 구성으로 인기는 금방 시들해졌다. 이후 2009년 영화 <아바타>, 2013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그리고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이 나타나 아바타와 메타버스에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메타버스가 상상 속 허구적 세계관을 벗어나 급격하게 현실화 된 것은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 사태를 맞으면서다. 팬데믹 기간 여행이나 만남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이용해 가상 세계에서 회의와 미팅을 하고, 온라인 쇼핑몰이나 배달 플랫폼을 통해 쇼핑을 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SNS나 텍스트 및 오디오 챗 서비스 등을 통해 소통하는데 익숙해졌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 뮤지엄과 갤러리, 전시 공간과 공연장은 문을 닫아야 했고, 이 중 상당수는 영구 폐관했다. 아트 페어와 비엔날레 같은 예술 행사들은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미술관, 박물관은 유튜브나 SNS, 웹사이트 등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시 공간을 신속하게 전환했다. 가상 현실(VR)이나 증강 현실 (AR) 등을 접목해 가상 공간에서 퍼포먼스과 전시를 했다. 갤러리들은 온라인 뷰잉 룸 (OVR)을 통해 작품을 소개했다. 다양한 신기술의 향연처럼, 아이러니컬하게도 팬데믹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통해 라이프로깅이나 거울세계를 넘어, 그리고 저차원적 가상세계를 넘어 메타버스를 확장 구현하는 실험을 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시기였던 셈이다.
이제 소설이나 엔터테인먼트 컨텐츠 속 상상의 메타버스는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홀로그램이나 글래스 등 다양한 실감 디바이스,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까지 가세해 기술 간, 업계 간의 융합과 협업을 통해 메타버스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간다.
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디 예술과 기술과 철학은 ‘테크네’라는 우산 아래 있는 하나의 개념이었다. 오히려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전시하고 감상하고 평가하고 해석하는 협의의 ‘예술’의 역사는 200여 년 남짓할 뿐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발명, 시각적 미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테크네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있다가 과학기술과, 철학과 예술이 서서히 분화되어 오늘날의 ‘예술’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혁명, 더 나아가 제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파열적 기술 혁신의 시대에 이르러 분화되었던 예술과 과학기술과 철학은 다시 융합하기 시작했다. 시각예술은 장르간 분류체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시각예술, 공연예술, 대중예술, 디자인 등 각 예술 간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마르셀 뒤샹이 누구나 예술 창작자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지 100여 년이 지났고, 마침내 스마트폰 하나면 예술창작부터 전시와 공연, 수용과 향유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전업 예술창작자들 역시 다양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장르를 넘나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콘텐츠를 생산하고 새로운 유통 방식을 꾀하고 있다. 예술창작자들은 탈장르적, 탈장소적, 이른바 ‘비물질' 예술을 생산하고, 이를 전시하고 유통하는 디지털 플랫폼 또한 다변화됐다. 인터넷망에 연결만 되어 있다면 어디서든 예술 컨텐츠를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으나 바로 지금 여기에도 있는 존재 방식, 원격현전(telepresence)하는 시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관객은 예술의 창작 과정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20세기 초의 선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관람객은 이제 소극적 향유자가 아니라 예술창작을 직접 체험하거나 상호작용함으로써 예술을 완성하는 적극적 향유자이자 예술가의 협업자 지위에 오르게 됐다.
요컨대,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넷아트, 컴퓨터아트, 사이버아트, 모바일 아트, 뉴미디어아트의 계보를 따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프린터, 5G기술, 그리고 빅데이터, 블록 체인 등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발맞춰 예술창작 환경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를 메타버스에 구현함으로써 정점을 찍고 있다.
2021년 3월 23일부터 4월 11일까지 한 가상 공간에서 시각예술가, 일러스트, 디자이너, 애니메이터 등이 기획하고 참여한 색다른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은 크립토복셀(cryptovoxels)이라는 가상 부동산 거래소에서 가상 화폐로 매입한 갤러리 공간이었다.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를 하는 이들은 작가 개개인이었지만, 정작 전시 현장에 참여한 것은 작가와 관람객의 분신인 아바타들었다. 곧이어 4월 18일부터 일주일간 열린 ‘Korean NFT Exhibition’ 전시는 미국 개발사가 설계한 실감형 VR을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에 설계된 가상 컨벤션 센터 NFT OASIS에서였다. 사이버 펑크 감성으로 디자인된 이 가상 컨벤션 센터는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오큘러스 퀘스트 같은 VR 디바이스를 착용해 3차원으로 구현할 수도 있고, 편의상 PC를 통해 2D로 구현할 수도 있었다. 오프닝에서 참여 작가들은 각자 자신만의 개성이 표현된 아바타를 통해 다른 참여작가들과 컬렉터, 관람객들과 만나 대화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메타버스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고, 각자의 집 침대에 누워서도 아바타라를 통해 교류할 수 있다. 비물질성과 탈장소성이라는 동시대 예술을 이만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에서 예술의 미래를 그려보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술, 그 중에서도 NFT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NFT는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의 약자이다.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을 이용해 이미지, 영상, 음악 등과 같은 디지털 파일에 고유의 식별 정보를 부여해 디지털 자산화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암호 화폐와 달리 NFT는 토큰마다 각각 고유 가치가 생성되고, 각 NFT는 서로 다른 가치를 보유하고 있어서 이러한 대체 불가능한 속성은 원본성, 진본성, 희소성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작품에 적합하다. 특히 무한 복제, 가공, 배포가 가능하고 통제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던 비물질 디지털 매체 예술은 NFT라는 일종의 디지털 서명을 통해 저작자성이나 원본성을 기록함으로써 불법 복제로 인한 권리 침해를 방지할 수 있다. 메타버스 공간은 필연적으로 비물질 디지털 매체 컨텐츠로 채워지는데 디지털 매체 예술의 보존, 유통에 있어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NFT가 대안이 되면서 메타버스와의 시너지가 폭발한다.
디지털 매체 예술은 권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한 복제, 무한 재가공, 무한재배포가 가능하다. 그런데 블록체인 상에서는 저작권 및 소유권 정보가 영구적으로 기록되고 코딩을 통한 스마트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창작자 및 소장자는 권리 침해 또는 계약 위반의 우려 없이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가상 갤러리, 가상 미술관 등에 대여하거나 제3자에게 양도 또는 이용허락할 수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창작자나 소장자들의 중요한 권리 보호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블록 체인 기술과 메타버스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한국의 예술창작자 커뮤니티는 스스로를 ‘한국 NFT 아티스트’라 칭하며 단단한 신뢰와 유대 관계를 형성해 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룹 전시를 준비하고 도록을 제작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국가나 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은 오디오 챗 서비스인 클럽하우스, 트위터와 카카오톡 오픈 챗, 디스코드 같은 SNS를 통해 소통하며 NFT 플랫폼에 작품을 민팅하고 판매하고, 홍보하는 방법에 대해 공유하고, 함께 전시나 이벤트를 기획하고 전시장에서 아바타로 만나 교류한다.
메타버스의 미래는 무한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닿는 곳에서 새로운 메타버스가 열린다. 비물질 예술의 구현뿐만 아니라 물질화된 전형적인 예술을 복제해 '디지털 트윈’을 만듦으로써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 기술 등을 통해 메타버스 뮤지엄을 만들 수도 있다. 남미 대륙에 있는 예술이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직접 여행을 하지 않고도 실감형 기술을 통해 디지털 원격현전을 경험케 할 수 있다. 웹 VR 방식의 3차원 가상 부동산 크립토 복셀이나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같은 플랫폼에서 가상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독자적으로 메타버스 공간을 창출해 아트 스페이스를 만들 수도 있다. 소유자는 가상 부동산에 고대 유적을 재현해 박물관을 세울 수도 있고, 상호작용성에 기반한 놀이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NFT가 비물질 예술과 비물질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이용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가상의 부동산이나 예술품을 포함한 가상의 동산의 ‘디지털 트윈'의 관리는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탈중앙화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블록 체인과 암호화폐는 현실 세계의 규율과 어떻게 조화할지, 메타버스는 현실의 법과 제도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지, 기술 산업의 발전과 개인의 권리 간의 조화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윤리적, 법적, 제도적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신개념주의 시각예술가 코디 최는 1997년, 앞으로의 사회는 가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이중뇌(Double Brain) 구조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모뎀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던 시절, 인터넷과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수집한 이미지 데이터들을 여러 레이어로 증식해 데이터 베이스 페인팅(Database Painting)이라는 디지털 아트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특히 21세기에는 현실의 자아와 가상의 자아가 정신 착란이나 분열 없이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2015년 유발 하라리가 신이 되려는 인간, ‘호모 데우스’(Homo Deus)를 개념화했는데 신이 아닌 인간은 스스로 바꿀 수 없는 현실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메타버스를 창조하고 있다.
2021년 현대인은 누구나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SNS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라이프로깅이나 거울세계 형태의 메타버스를 경험한다. 예술창작자들, 예술창작자들과 개발자들은 블록체인 기술과 메타버스가 결합된 새로운 세상에 환호하며 마치 서부개척시대에 자신의 땅을 표시하는 깃발을 꽂기 위해 말을 달리듯 달려가고 있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한 가지 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안전했던 모든 것들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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